고조는 동복현감(同福縣監) 서운(徐運)이고, 증조는 하동현감(河東縣監) 서백(徐백)이며, 할아버지는 주부(主簿) 서관(徐瓘)이다.
1585년(선조 18) 회령의 보을하진첨절제사(甫乙下鎭僉節制使)로 정탐의 임무를 띠고 두만강을 건너 오랑캐 땅에 깊이 들어갔으나 80여 명의 부하를 모두 잃고 패주한 죄로 종성(鐘城)에 수감되었다.
그 뒤 석방되어 김해부사로 있을 때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성을 수비하던 중 적이 보리를 베어다가 성의 높이와 같게 쌓고 쳐들어오자 패주하였다. 그 뒤 의병장 김면(金沔)과 협력하여 지례의 왜적을 격퇴하고, 1차 진주성싸움에 목사 김시민(金時敏)을 도와 왜적과 항전하였다.
김시민이 병으로 죽자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겸 순찰사 김성일(金誠一)에게 발탁되어 진주목사가 되었으나 이듬해 왜적이 재차 진주성을 공격해오자 성을 버리고 숲속에 숨어 있다가 살해당하였다.
본래 힘은 세지만 어리석고 겁이 많아서 무장으로서 별다른 전공을 세우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형 서인원(徐仁元)이 명사(名士)였기 때문에 그 덕으로 요지의 변방을 지키는 장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