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공서(公瑞), 호는 장계(長溪). 서명삼(徐命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서호수(徐好修)이고, 아버지는 서유계(徐有階)이며, 어머니는 조덕화(趙德和)의 딸이다.
1801년(순조 1) 정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이듬해에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로 임명되었으나 이때 윤덕준(尹德駿)의 시호를 의정(議定)하려는 것을 반대하는 소(疏)를 올렸다가 파직당하였다.
1803년에 동지사(冬至使) 서장관(書狀官)에 임명되어 연경(燕京)에 가던 도중 별단(別單)을 올려 장자도(獐子島) 부근의 고려구자(高麗溝子)에 백성들을 이주시키고 군사를 보내어 순찰하도록 하였다.
승지를 거쳐, 1819년에 곡산부사로 있던 중 태조의 근거지였던 곡산부에 비석을 세웠는데, 이때 그 공로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1820년에 대사성에 임명되었고, 1825년에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에 경기감사로 부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