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겸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곽재우의 화왕산성 전투를 지원한 학자·의병장.
이칭
  • 죽계(竹溪)
  • 화익(和益)
인물/전통 인물
  • 본관달성(達城)
  • 사망 연도1617년(광해군 9)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57년(명종 1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민식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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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곽재우의 화왕산성 전투를 지원한 학자·의병장.

개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화익(和益), 호는 죽계(竹溪). 아버지는 문학습독 서진(徐津)이며, 어머니는 부림홍씨(缶林洪氏)이다. 서사원(徐思遠)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성리학에 잠심(潛心), 궁구(窮究)하고 명리(名利)를 탐내는 마음이 없었다. 정사철(鄭師哲)·손처눌(孫處訥) 등과 도의로 교제하며 향풍(鄕風)의 교화에 힘썼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서재겸의 형 서득겸(徐得謙)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왜적과 싸웠다. 당시 곽재우(郭再祐)가 이끄는 의병들은 화왕산성(火旺山城)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그 곳으로 의병을 이끌고 가는 도중 낙동강 상류인 아금암(牙琴巖)에서 왜적을 만나 접전 끝에 중과부적으로 형 서득겸을 비롯한 많은 의병들이 전사하였다.

그 후 서재겸은 남은 병력을 수습하여 화왕산성의 곽재우 휘하에 들어가 많은 전공을 세웠다. 16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도 서재겸은 팔공산에서 각 지방의 의병장과 회맹(會盟), 적과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였다. 서재겸은 시문에도 능하여 당시에 있었던 일을 시·일기 등으로 기록해 놓았다. 저서로는 『죽계유고(竹溪遺稿)』 3권이 있다.

참고문헌

  • - 『죽계유고(竹溪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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