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문신 이정암이 임진왜란의 전황을 기록한 일기.
개설
편찬/발간 경위
내용
당시 황해도에는 관찰사와 각읍 수령들이 외진 섬이나 산속으로 피신해 공백 상태여서 반민(叛民)들을 다스릴 만한 힘이 미치지 못하였다. 그런데다 구로다[黑田長政]의 대군이 주둔하고 있으면서 해주를 주무대로 하여 열읍을 수중에 넣고 있었으며 오직 연안부만이 온전하였다.
그러므로 이정암은 해주·평산·연안 등의 읍에 통문(通文)을 보내 의병을 모집하고 지원자의 성명을 의병약서책(義兵約誓冊)에 기록한 뒤 8개항의 의병약속을 명문화해 주지시킨 다음 연안성의 수비를 결심하였다.
연안부민들은 이정암이 전에 연안부사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었던 관계로 그를 믿고 부민들이 속속 성내로 들어왔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구로다는 많은 왜병을 끌고 연안성을 공파할 목적으로 대거 침입해 왔다.
성중은 왜군과 싸울 차비를 채 갖추지 못했는데 적이 당도하자 성중의 군민은 동요하였다. 그러나 이정암의 비장한 결의로 일심동체가 되어 적침에 대처하였다.
1592년 8월 27일부터 9월 2일에 이르기까지 5주야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은 끈질긴 대항 끝에 왜병을 물리치고 대첩을 거둘 수 있어 행재소(行在所)와 양호(兩湖) 사이에 끊겼던 통로가 다시 열릴 수 있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사류재집(四留齋集)』(이연풍)
- 『서정일록(西征日錄)』(이장희, 탐구당,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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