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일록 ()

조선시대사
문헌
조선시대 문신 이정암이 임진왜란의 전황을 기록한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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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문신 이정암이 임진왜란의 전황을 기록한 일기.
개설

1592년(선조 25) 이정암(李廷馣)이 임진왜란을 치르면서 몸소 체험한 일과 의병을 일으켜 연안대첩(延安大捷)을 하기까지의 전황을 기록한 난중일기(亂中日記).

편찬/발간 경위

선조가 평안도로 몽진하기 전날인 1592년 4월 28일부터 같은 해 10월 7일까지 156일간(8월 14일자는 결함)의 기록이다.

내용

7월 중순 이전은 왜병을 피해 다니는 피난 기사와 당시 개성유수로 있던 아우인 이정형(李廷馨)과 함께 개성을 고수하려는 계획 등이 내용의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뒤는 해서지방(海西地方)에서의 의병 활동이 주로 적혀 있다.

당시 황해도에는 관찰사와 각읍 수령들이 외진 섬이나 산속으로 피신해 공백 상태여서 반민(叛民)들을 다스릴 만한 힘이 미치지 못하였다. 그런데다 구로다[黑田長政]의 대군이 주둔하고 있으면서 해주를 주무대로 하여 열읍을 수중에 넣고 있었으며 오직 연안부만이 온전하였다.

그러므로 이정암은 해주·평산·연안 등의 읍에 통문(通文)을 보내 의병을 모집하고 지원자의 성명을 의병약서책(義兵約誓冊)에 기록한 뒤 8개항의 의병약속을 명문화해 주지시킨 다음 연안성의 수비를 결심하였다.

연안부민들은 이정암이 전에 연안부사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었던 관계로 그를 믿고 부민들이 속속 성내로 들어왔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구로다는 많은 왜병을 끌고 연안성을 공파할 목적으로 대거 침입해 왔다.

성중은 왜군과 싸울 차비를 채 갖추지 못했는데 적이 당도하자 성중의 군민은 동요하였다. 그러나 이정암의 비장한 결의로 일심동체가 되어 적침에 대처하였다.

1592년 8월 27일부터 9월 2일에 이르기까지 5주야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은 끈질긴 대항 끝에 왜병을 물리치고 대첩을 거둘 수 있어 행재소(行在所)와 양호(兩湖) 사이에 끊겼던 통로가 다시 열릴 수 있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위와 같은 내용을 일자별로 기록해 당시의 전황과 황해도에서의 의병 활동 등을 상세히 알 수 있게 한다. 이 『서정일록(西征日錄)』은 이정암의 친필초고본으로 전해오던 것을 1977년 탐구당(探求堂)에서 탐구신서(探求新書) 204호로 원문과 함께 번역, 간행하였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사류재집(四留齋集)』(이연풍)
『서정일록(西征日錄)』(이장희, 탐구당, 1977)
집필자
이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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