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벽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삼척부사, 사옹원첨정, 온양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국보(國寶)
인물/전통 인물
  • 본관달성(達城)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삼척부사|사옹원첨정|온양군수
  • 출생 연도1696년(숙종 2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능하 (단국대학교동양학연구소,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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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삼척부사, 사옹원첨정, 온양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국보(國寶). 서성(徐渻)의 현손이며, 제조(提調) 서경주(徐景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서정리(徐貞履)이고, 아버지는 예조판서 서문유(徐文裕)이며, 어머니는 이홍적(李弘迪)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1년(경종 1)에 진사에 올라 동몽교관(童蒙敎官)에 보임된 뒤, 삼척부사·사옹원첨정(司饔院僉正)을 역임하였다. 어가(御駕)를 따라 온양의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렀다가 온양군수에 임명되었으며, 뒤에 목사까지 지냈다. 56세 되던 해 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1771년(영조 47) 박필순(朴弼淳)이 청나라 사람 주인(朱璘)이 쓴 『명기집략(明紀輯略)』을 입수하였는데, 그 내용 중에 태조와 인조에 관련한 서술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영조에게 보고하였다. 영조는 종계 문제를 바로잡기 위하여 진주사(陳奏使) 파견을 명하는 한편, 『명기집략』에 찍혀있는 도장의 출처를 알아보게 하였더니 서종벽의 것이었다. 이 일로 서종벽은 생전의 관작을 추탈당하였지만, 2달 후에 처벌이 보류되었다. 순조 대에 이조참의(吏曹參議)로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사마방목(司馬榜目)』

  • - 『보만재집(保晩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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