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履)의 일종으로 나무나 가죽을 여러 겹 대어 습기가 오르는 것을 막았다.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우리 나라에는 삼국시대에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정종이 관복을 도입한 이후로 조선시대 말까지 왕과 왕비가 신었다. 색은 착용하는 옷이나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즉 정종 때부터 의종 때까지는 면복(冕服)에는 적석을 신었고, 원유관(遠遊冠)·강사포(絳紗袍)에는 흑석을 신었으며, 공민왕 때에는 관복에 적석을 신었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상복(常服)에는 적석, 1403년(태종 3)의 왕복에는 홍색의 사석(絲舃), 1425년(세종 7)에는 흑석, 1444년의 면복에는 홍사석이 착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왕비복에는 공민왕 때에 청석(靑舃)이 있었고, 조선시대 인목대비가례 때 적의(翟衣)에 적석을, 효현세자가례 때 빈궁과 중전의 법복(法服)에 적석을 신은 기록이 보인다. 영조 때 ≪상방정례 尙方定例≫에 의하면 빈궁 법복에는 흑석으로 바뀌었다.
유물로는 왕비 또는 동궁비가 적의를 입을 때 신었던 청석(중요민속자료, 1979년 지정)과 조선 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청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