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당

  • 예술·체육
  • 제도
  • 조선 전기
북한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구역에 있는 조선전기 함경도관찰사의 감영에 설치된 관청.
제도/관청
  • 설치 시기1416년(태종 1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종수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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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구역에 있는 조선전기 함경도관찰사의 감영에 설치된 관청.

내용

함경도 관찰사의 정청(政廳)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정면 8칸, 측면 4칸의 익공계(翼工系)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다듬은 돌을 여러 켜로 쌓아 만든 기단 위에 높이 60㎝인 네모 주춧돌을 놓은 다음 흘림기둥(두리기둥) 24개를 세웠다.

기둥 위에는 외목도리(外目道里)를 받치도록 3익공을 짜올렸고, 창방 위에 놓인 대형 화반(花盤)은 1.3m×0.5m 크기로 굵은 선으로 조각하고 생동감 있는 단청을 가하여 만들었다. 화반 · 제공(諸貢) · 보머리를 조각한 솜씨도 뛰어나고, 용마루 · 박공마루 · 추녀마루 · 지붕면 등의 휨선도 아름다워서 당시의 뛰어난 건축술을 잘 드러내 준다.

단청은 모루단청[毛老丹靑: 머리초에만 칠한 단청]이며, 건물 내부에는 네모기둥을 2줄로 늘어세우고 칸마다 문을 달았으며, 문짝은 분합문으로 만들어 열 수 있게 하였다. 관찰사가 거처하던 방은 서쪽에 있으며, 이곳에는 고미다락이 마련되어 있다. 천장은 우물반자로 화려하게 마감하였다.

원래 선화당의 앞 좌우에는 하급관리들이 일을 보던 영리청 · 비장청이 마주 서 있었으며, 지방특산물을 임금에게 올려보내는 일을 맡아보던 진상청, 세무를 보던 도리청, 음식과 의복을 준비하던 영고청, 약재를 마련하던 심약청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징청각(澄淸閣)만 남아 있다.

함흥은 국방상 긴요한 곳으로 늘 중요시되었으며, 그 관청인 본영(本營) 또한 중요시되었다. 선화당은 1416년(태종 16)에 함흥을 함흥부로 승격시키고 관찰사의 본영을 이곳에 둘 때 건립하였으며, 1710년(숙종 36)에 크게 보수하였고, 1764년(영조 40)에 다시 건립하였다. 조선시대 관청 건물의 짜임새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건물로서, 그 앞에 아득히 펼쳐진 함주벌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함흥 10경의 하나로 불려온 곳이다.

참고문헌

  • - 『북한의 문화유적 순례』(양태진, 백산출판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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