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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물품
조선시대 궁중연향의 등가(登歌:전상악(殿上樂))에 편성된 악기의 하나로서 뿔피리 비슷하게 관대 끝이 약간 구부러진 관악기.
정의
조선시대 궁중연향의 등가(登歌:전상악(殿上樂))에 편성된 악기의 하나로서 뿔피리 비슷하게 관대 끝이 약간 구부러진 관악기.
연원 및 변천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끊나니’라는 시조구절에 보이듯, 가(笳)는 북방민족의 악기이다. 4세기 후반의 안악3호분 회랑 벽화의 행렬도를 보면 수레 앞에 보행악대가 가고 수레 뒤에 기마악대가 따르는데, 가(笳)는 고(鼓)ㆍ배소(排簫)ㆍ요(鐃) 등과 함께 기마악대에서 연주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가무(笳舞)는 신라 내물왕(奈勿王:재위 356∼402) 때 만들어졌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1828년(순조 28) 2월순원왕후(純元王后) 40세 경축 진작(進爵)에 가(笳)가 연주되었다는 기록이 보이며, 1892년(고종 29) 고종 즉위 30주년 경축 진찬(進饌)에 이르기까지 계속 궁중연향에 쓰였으나, 대한제국으로 선포한 1897년 이후의 궁중연향에서는 쓰이지 않았다.

구조 및 형태

『무자진작의궤(戊子進爵儀軌)』(1828년)와 『기축진찬의궤(己丑進饌儀軌)』(1829년)의 가(笳)는 지공(指孔)이 3개이지만, 『무신진찬의궤(戊申進饌儀軌)』(1848년)・『정축진찬의궤(丁丑進饌儀軌)』(1877년)・『정해진찬의궤(丁亥進饌儀軌)』(1887년)・『임진진찬의궤(壬辰進饌儀軌)』(1892년)의 가는 지공이 8개로서, 지공 수에 서로 많은 차이가 있다.

중국 문헌인 진양(陳暘)의 『악서(樂書)』에 따르면 가(笳)는 양의 뼈를 깎아서 만들거나 갈대잎을 말아서 만들었으며, 지공이 없다. 그러나 『무자진작의궤』 권2에 “가(笳)는 산유자목(山柚子木)으로 만드는데, 길이는 3척 5촌이다.”라고 했으니, 조선 후기 궁중연향에 쓰인 가는 중국문헌의 가와는 재질이나 형태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무자진작의궤(戊子進爵儀軌)』
『기축진찬의궤(己丑進饌儀軌)』
『무신진찬의궤(戊申進饌儀軌)』
『정축진찬의궤(丁丑進饌儀軌)』
『정해진찬의궤(丁亥進饌儀軌)』
『임진진찬의궤(壬辰進饌儀軌)』
『신축진찬의궤(辛丑進饌儀軌)』
『악서(樂書)』(송(宋) 진양(陳暘) 찬(撰))
집필자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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