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지금의 경주) 율리(栗里) 출신으로 보이나 집안은 매우 가난하였다. 굳은 정조와 방정한 품행으로 그녀의 행적이 『삼국사기』 열전에 실려 전한다.
진평왕 때 그 아버지가 늙은 몸으로 국경을 지키는 일에 징발되었는데, 대신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설씨녀는 매우 고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부터 그녀를 흠모해 왔던 사량부(沙梁部) 출신 소년 가실(嘉實)이 이 소문을 듣고 역을 대신해 주겠다고 자청하였다. 이를 고맙게 생각한 아버지는 두 사람을 혼인시키기로 하였다. 두 사람은 역이 끝난 뒤 혼인하기로 하고, 거울을 절반씩 나누어 신표(信標)로 삼고 헤어졌다.
그런데 전쟁이 계속되어 군사들을 교대시키지 않아 6년이 지나도록 가실은 돌아오지 못했다. 기다리다 지친 설씨녀의 아버지는 약속한 3년이 지났으니 다른 사람과 혼인할 것을 권했으나, 설씨녀는 약속을 어길 수 없다고 하며 반대하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녀 몰래 마을 사람과 혼인을 약속하였다. 혼례일이 되어 아버지가 신랑을 맞아들였으나 그녀는 거절하고 도망하려 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때 가실이 돌아왔다. 야위고 남루해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자, 가실은 신표인 깨진 거울을 내놓아 자신이 가실임을 알렸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혼인을 해 일생을 해로하게 되었다.
설씨녀의 이 같은 꿋꿋한 행동은 한국 여인들의 의연한 기품을 잘 보여 준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이 이야기는 몇 안 되는 고대인들의 연담으로도 흥미를 주지만, 그 속에 고대 사회의 실상을 전하는 바가 있어 더욱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