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편찬을 비롯하여 천문 기상현상과 지변(地變)을 관장하던 정부의 한 부서였던 관상감(觀象監)이 조정에 보고하기 위하여 작성한 것이다.
성변이나 천변에 속하는 현상들에 관한 규정과, 그 현상들을 관측하는 방법, 그리고 그 결과를 기록하는 양식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한 것으로 성주덕(成周悳)이 저술한 『서운관지(書雲觀志)』가 있다.
이 책에는 천문현상에 속하는 12종과, 기상현상에 속하는 20종 그리고 지진까지 합하여 모두 33종의 천변과 지변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이 33종의 현상 중에서 관측단자로 보고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8종에 지나지 않았다.
즉, 신성이나 혜성을 뜻하는 객성(客星), 혜성, 꼬리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이거나, 꼬리가 전혀 없는 상태의 혜성인 패성(孛星), 긴 꼬리가 두 개로 갈라져 보이는 혜성인 치우기(蚩尤旗), 운석을 뜻하는 영두성(營頭星), 독특한 형태로 드물게 보이는 햇무리인 백홍관일(白紅貫日), 달무리인 백홍관월, 가끔 일어났던 지진인 지진지동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측후단자는 지금까지 원본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한 장도 없고, 다만 그 중 극히 일부가 세가지 형태로 전해 내려오고 있을 뿐이다.
그 중에서 첫번째 형태는 몇 사람의 학자들의 연구논문에 사진으로 남아 있는 경우이고, 두번째 형태는 측후단자의 내용을 그대로 다시 옮겨서 책으로 묶은 관상감의 등록(謄錄)이다. 세번째 형태는 측후단자의 내용만이 전사(轉寫)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된 것이다.
먼저 첫번째 형태인 사진으로 복사되어 남아 있는 것은 지금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1664년(현종 5)에 나타난 보기 드문 큰 혜성의 성변측후단자 다섯 장인데 날짜순으로 보면 그 해 갑진 10월 27일, 10월 28일, 11월 5일 ·7일 ·10일의 것이다.
이 다섯 장의 성변측후단자 중 혜성의 모양이 주위의 별자리와 함께 잘 볼 수 있도록 보존된 것은 11월 7일의 것이고, 측후단자의 전체 모양과 함께 관측기록 전문이 가장 완벽하게 되어 있는 것은 11월 10일의 것인데, 그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금년(현종 5년 갑진) 11월 10일 정유(1664년 12월 26일)밤 9시 30분경, 혜성이 공기가 탁하고 약간 흐린 남동쪽 하늘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나, 달빛이 밝아서 관측이 어려웠다.
그리고 밤 12시경 달이 진 후, 자세히 관측해 보니 혜성이 성수(星宿, 바다뱀 ○)에서 1° 떨어져 있었고, 외주(外廚 : 일각수자리의 동쪽 끝)의 동방에 있었다. 북극으로부터의 거리는 117°(적도 남쪽 27°)이며, (혜성의) 형태와 색깔과 꼬리의 길이는 어젯밤과 다름이 없었다.
부사 맹신정
부사 맹신윤
부사 정신박
홍문관부응교 신김
두번째 형태인 등록은 성변등록(星變謄錄), 천변등록(天變謄錄) 또는 객성등록(客星謄錄)이라는 여러 가지 명칭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기상학자인 와다(和田雄治)가 조사한 바 있는 1664년의 혜성의 등록은 『강희갑진년 천변등록(康熙甲辰年天變謄錄)』으로 되어 있다.
세로 46㎝, 가로 36㎝인 크기의 종이 41장으로 묶여진 책이라 하나, 불행하게도 소재가 알려지지 않고 있어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등본은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서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강희갑진년의 천변등본보다 훨씬 작다(세로 34㎝, 가로 22㎝). 이 등본은 3개의 혜성의 기록인데 표지까지 합해서 전부 39장으로 묶여 있다.
그 내용을 보면 15장으로 된 옹정원년구월성변등록(雍正元年九月星變謄錄, 경종 3년 9월, 1723년 10월)과 14장으로 된 건륭 24년 3월 성변등록(乾隆二十四年三月星變謄錄, 영조 35년 3월, 1759년 4월)과 8장으로 된 건륭 24년 12월 객성등록(乾隆二十四年十二月客星謄錄, 영조 35년 12월, 1760년 2월)으로 되어 있다.
측후단자는 관측되는 즉시 측후관원들에 의해서 조정에 보고되어 국사를 도모하는 데 활용되었기 때문에 『승정원일기』에 보고자들의 이름만이 제외되었을 뿐 측후단자의 원문이 거의 완전하게 전개되어 있다. 따라서 『승정원일기』에 있는 기록은 보존되어 있는 측후단자의 내용 중에서는 가장 그 양이 풍부하다.
이 밖에도 그 수는 몇 개의 혜성에만 국한된 것이기는 하나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관상감 서고의 고문서를 정리하던 일본의 기상학자와 천문학자들이 측후단자가 지닌 그 가치를 깨닫고 몇 편의 연구논문에 그들이 사용했던 측후단자의 내용을 활자화하여 남겨 놓은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