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건물. 197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낮은 월대(月臺 : 섬돌) 위에 세워져 있다. 전면에는 네짝 분합문이 닫혀 있고 그 안 맞은편 뒷벽에 자그마한 보개(寶蓋)가 설치된 감실 속에 관우(關羽)의 부부상(夫婦像)이 있다.
전면 분합문 위 문인방(門引枋)에 ‘顯聖殿(현성전)’이라 쓴 액자가 걸려 있다. 임진왜란 이후로 서울에는 남묘 · 동묘가 나라에서 제를 올리던 제도였음에 반하여, 민간에서 모시던 중묘 · 북묘 · 서묘 등이 있어 관왕묘(關王廟)라 일컬었다.
그 뒤 조선 말기에 이르러 임오군란 · 갑신정변 · 청일전쟁 등 어수선한 정국이 반복되면서 1902년 이후로 관왕묘의 격을 올려서 현성묘 또는 성제묘라 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방산동의 18번지일대에는 훈련원이 있었고 4번지일대에는 임진왜란 이후로 염초청(焰초廳)이 있어서, 이곳 ‘현성묘’가 그들 군인들이 받들던 관왕묘였으나 일제강점기 이후로 민간의 묘당으로 명맥을 유지하여온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