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술에 누룩을 쓰지 않는 이양주(二釀酒)이다. 고려시대부터 제조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가장 많이 알려진 술이다. <농가월령가> 정월령에는 “며느리 잊지 말고 소국주 밑하여라.”라는 구절이 보이며, ≪동국세시기≫ 3월조에는 술집에서 소국주를 판다고 하였다.
≪경도잡지 京都雜志≫ 풍속조에도 소국주는 봄에 빚는 술로 기록되어 있다. ≪시의전서 是議全書≫ · ≪양주방≫에는 정월 첫 해일에 담아 3∼4월에 쓴다고 하였다. ≪규합총서 閨閤叢書≫ · ≪요록 要錄≫ · ≪역주방문 曆酒方文≫에도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다. ≪규합총서≫에 나온 제조법은 다음과 같다.
정월 첫 해일에 냉수 여덟 되를 항아리에 붓고 막누룩 칠홉을 물에 담갔다가 사흘 만에 제 물에 걸러 체에 밭인다. 깨끗이 씻은 멥쌀 닷 되를 가루 내어 흰무리를 쪄서 더울 때에 슬슬 헤쳐 누룩을 거른 물에 풀어넣는다. 사흘 후에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가지로 풀어지게 저은 뒤에 차게 덮어두었다가 2월쯤 맛을 본다.
이때에 맛이 달콤쌉쌀하면 멥쌀 한 말을 깨끗이 씻어 하룻밤 두었다가 물 일곱 되나 여덟 되를 고루 뿌려가며 폭 익게 쪄서 지에밥을 만든다. 그리고는 식기 전에 그 술밑에 퍼붓고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가지로 고루 풀리게 저어둔다. 삼칠일 만에 살펴보아 술이 말갛게 고이면 떠 쓴다.
항아리가 크면 군내가 나고 작으면 술이 넘치니 알맞은 항아리에 담는다. 다른 술은 온기만 있어도 맛이 그릇되나, 소국주는 누룩을 사흘간 냉수에 담가 걸러 넣은 후에, 밑과 지에를 끓는 김에 퍼 넣어야 술이 유달리 아름답고 빛이 냉수 같으며 취하기도 덜한다고 하였다.
소국주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의 것이 유명하다. 며느리가 술맛을 보느라고 젓가락으로 찍어 먹다보면 저도 모르게 취하여 일어서지도 못하고 앉은뱅이처럼 엉금엉금 기어다닌다고 하여 ‘앉은뱅이술’이라고도 한다.
만드는 법은 멥쌀로 무리떡을 쪄서 이 떡과 누룩가루를 묽게 섞어 아랫목에 사흘 동안 재우면 향긋한 냄새의 술밑이 된다. 찹쌀로 다시 술밥을 찌고, 누룩은 밀가루처럼 곱게 친 녹갱이 누룩을 준비한다. 시루 맨 밑에 술밥을 깔고, 그 위에 녹갱이 누룩가루를 뿌린다. 그리고 그 위에 술밑을 깔아 마치 시루떡처럼 앉힌 뒤 100일 동안 땅 속에 묻어둔다. 100일이 지난 뒤 땅을 파고 열어보면 끈끈하고 샛노란 술이 젓가락 끝에 붙어 당긴다.
추수가 끝난 뒤 소국주를 빚는 날이면 동네 여인들이 목욕재계하고 소복을 갈아입고 정성을 다하였다. 특히 한산의 물은 염분이 전혀 없고 철분이 약간 섞여 있어 술맛이 좋다고 한다. 이 한산지방의 소국주는 1979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어 그 제조법이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