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6년(공민왕 5) 감찰대부(監察大夫)로 있을 때 전호군(前護軍) 임중보(林仲甫)가 충혜왕(忠惠王)의 아들 석기(釋器)를 옹립하려던 모반사건(謀叛事件)에 연루되어 하옥되었으나, 곧 혐의를 벗고 풀려났다. 그 뒤 신돈(辛旽)이 실권을 잡고 있을 때에도 역시 감찰대부(監察大夫)로 있으면서 신돈에게 아부하였다.
1368년 신돈에 의하여 국자감시시관(國子監試試官)의 물망에 올랐으나, 환관(宦官) 이강달(李剛達)이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이무방(李茂芳)과 권사복(權思復)을 추천함으로써 서로 다투게 되어 공민왕(恭愍王)이 국자감시를 폐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사헌(大司憲)에 올랐으며, 1371년 신돈이 실각함과 동시에 그 일당으로 지목되어 장류(杖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