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거신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사냥을 수행하다 표범으로부터 태종을 구해 녹훈되었으며, 군기소감, 상호군, 우군도총제 등을 역임한 무신 · 공신.
이칭
시호
충정(忠靖)
이칭
여산부원군(礪山府院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369년(공민왕 18)
사망 연도
1447년(세종 29)
본관
여산(礪山: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주요 관직
군기소감|사복시부정|호룡순위사대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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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사냥을 수행하다 표범으로부터 태종을 구해 녹훈되었으며, 군기소감, 상호군, 우군도총제 등을 역임한 무신 · 공신.
개설

본관은 여산(礪山). 아버지는 전법판서(典法判書) 송첨(宋詹)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태종의 비인 원경왕후(元敬王后)와 인척이 되는 인연으로 태종의 잠저(潛邸: 임금이 되기 전의 거처나 그 생활) 때부터 후대를 받았다.

별장을 거쳐 낭장으로 있을 때 이방원(李芳遠: 태종)을 따라 사냥을 나갔다가 섣불리 건드린 표범이 이방원에게 달려드는 것을 결사적으로 때려잡아 그를 구해주었다. 1401년(태종 1)에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4등에 책록되었다.

이어 군기소감(軍器少監)을 거쳐, 1402년에 내자소경(內資少卿)·사복시부정이 되었다. 이듬해 호룡순위사대호군(虎龍巡衛司大護軍)이 되고, 1404년에 상호군이 되었다. 1406년에 우군첨총제(右軍僉摠制)를 역임하고, 그 해 여량군(礪良君)에 봉해졌다.

1410년에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와 우군도총제(右軍都摠制)를 역임하였다. 1426년(세종 8)에 여산부원군(礪山府院君)에 진봉되었다. 이어 1439년에 왕으로부터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참고문헌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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