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목활자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간행 연도를 알 수 없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두에 목록이 있고, 권상에 시 23수, 제문 9편, 잡저 4편, 찬(贊) 1편, 비명(碑銘) 1편, 서(序) 2편, 기(記) 4편, 발(跋) 3편, 소(疏) 1편, 권하는 부록으로 만사·제선질신거(題璿侄新居)·제송대별장(題松臺別庄)·차송대운(次松臺韻)·봉정송대(奉呈松臺)·희정송대(戱呈松臺)·박능허사우록(朴凌虛師友錄)·제하주부문고후(題河注簿文稿後)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문학적 소재를 다룬 것은 없고, 대개 증정(贈呈)·창수(唱酬) 또는 만사 등 사교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제문의 「제정학포문(祭鄭學圃文)」은 친구인 정훤(鄭暄)에 대하여 쓴 것으로 곡진한 우정을 다룬 명문이다.
잡저의 「책슬문(責蝨文)」은 ‘이[蝨]’에 비유하여 당시 사회의 기생충과 같은 자들을 풍자, 비판한 글이다. 「청병영이설관덕당군기고문(請兵營移設觀德堂軍器庫文)」은 저자가 사헌부감찰로 있을 때 진주에 있던 병영과 군기고가 지리적 여건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다른 곳으로 이건할 것을 요청한 글이다.
소는 병자호란 이후 병제의 문란한 실정을 상세히 지적하고 그 개선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장문의 글이다. 하선은 이 소에서 당시의 병제인 속오군(束伍軍)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는 한편, 과거에 관한 법을 개정하여 각 도별로 무과제도를 마련, 무예를 익힌 유능한 인재를 뽑는 방식의 정병제를 건의하고 있다. 또한, 군역의 공정한 관리를 위한 호패제도(戶牌制度)의 부활도 주장하였다.
속오군은 임진왜란 때인 1594년(선조 27)에 처음으로 실시하여 효종 때 북벌계획으로 강화되었다가 여러 가지 병폐로 그 뒤 폐지되었던 바, 위의 상소문은 정책 반영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