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립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시대 선전관, 보성군수, 재령군수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입지(立之)
  • 시호장정(壯靖)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이괄의 난|병자호란
  • 본관진천(鎭川)
  • 사망 연도1667년(현종 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선전관|보성군수|재령군수
  • 출생 연도1582년(선조 1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반윤홍 (조선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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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선전관, 보성군수, 재령군수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입지(立之). 아버지는 백순(伯純)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임진왜란 때 11세의 나이로 아버지가 검지산(黔指山)에서 병력을 모집하여 싸우다가 죽고 형제도 포로가 되어 밀실에 갇히게 되자 송곳으로 벽을 뚫고 밤에 달아나 아버지의 시체를 수습하여 안장하였다.

1616년(광해군 8) 무과에 급제, 선전관이 되고 1623년 인조반정 후에 평안병사 이괄(李适)의 휘하에 들어갔다. 이듬해 이괄이 군량미 조달차 송립을 자산으로 보냈는데 영변에서 이괄의 반란 소식을 듣고 이괄에게 거짓으로 투항, 동료 허전(許佺)과 함께 손가락을 깨물어 이괄의 신임을 받고, 반군 3,000명을 거느린 선봉장이 되었다.

병졸을 동쪽으로 이끌고 가다가 이괄의 의심을 받았으나 토산에서 관군과 내통, 투항하여 이괄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이괄의 난이 평정된 뒤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고 보성군수가 되었다.

병자호란 때에는 죽산부사로서 왕을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여 굳게 지켰고 그 공으로 재령군수가 되었으며, 장수산성(長壽山城)을 쌓았다. 그 뒤 한성부윤이 되었다가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올라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장정(壯靖)이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검천지(黔川誌)』

  • - 『몽오집(夢梧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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