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호여(浩如), 호는 삼외당(三畏堂). 아버지는 우의정 신익상(申翼相)이다.
신숙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학문과 존양(存養) 공부에 힘썼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민비(閔妃)가 폐출되자, 당시 대사헌으로 있던 아버지가 그 부당함을 극간하고 즉시 양주의 사가로 돌아갔는데, 이때 신숙도 아버지를 따라갔으며 과거공부까지 단념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로 민비가 복위하자, 공조판서로 중임된 아버지를 따라 관계에 복귀하였다. 1700년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705년 순안현령·배천군수·황주목사로 초배(超拜: 일반적인 관직승급을 뛰어넘어 제수됨.)되었다.
황주는 다스리기 어려운 고장으로 불리어졌는데, 공평한 정치를 하고 가난을 구휼하여 치적이 현저하였으나 재직중 중풍으로 죽었다.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