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의 제11대 왕, 중종의 셋째 사위로 여성군에 봉해졌으며, 도총관 등을 역임하여 만년에는 선조의 자문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암유고』 등을 저술한 종실·학자·서에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글과 글씨에 능하여 산릉(山陵)의 지(誌)와 궁전의 액(額)으로부터 사대부의 비갈(碑碣)에 이르기까지 많은 글과 글씨를 남겼다. 송인은 특히 오흥(吳興)의 필법을 받아 해서를 잘 썼다고 한다. 저서로는 『이암유고(頤菴遺稿)』 12권 4책이 있다. 그의 글씨는 양주의 덕흥대원군신도비(德興大院君神道碑)·송지한묘갈(宋之翰墓碣), 남원의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 부안의 김석옥묘비(金錫沃墓碑), 여주의 김공석묘갈(金公奭墓碣), 남양의 영상홍언필비(領相洪彦弼碑), 광주(廣州)의 좌참찬심광언비(左參贊沈光彦碑) 등에 전한다.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참고문헌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대동서법(大東書法)』
- 『선조실록(宣祖實錄)』
- 『이암유고(頤菴遺稿)』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 『중종실록(中宗實錄)』
- 『택당집(澤堂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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