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의 제11대 왕, 중종의 셋째 사위로 여성군에 봉해졌으며, 도총관 등을 역임하여 만년에는 선조의 자문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암유고』 등을 저술한 종실·학자·서에가.
이칭
  • 명중(明仲)
  • 시호문단(文端)
  • 이암(頤菴)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여산(礪山)
  • 사망 연도1584년(선조 1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도총관
  • 출생 연도1517년(중종 12)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민식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이암유고 미디어 정보

이암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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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의 제11대 왕, 중종의 셋째 사위로 여성군에 봉해졌으며, 도총관 등을 역임하여 만년에는 선조의 자문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암유고』 등을 저술한 종실·학자·서에가.

개설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명중(明仲), 호는 이암(頤菴). 영의정 송질(宋軼)의 손자이며, 송지한(宋之翰)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의령남씨이다. 어려서 어머니가 죽자 외가에서 자랐다.

생애 및 활동사항

10세에 중종의 셋째 서녀인 정순옹주(貞順翁主)와 결혼하여 여성위(礪城尉)가 되고, 명종 때 여성군(礪城君)에 봉해졌다. 의빈부·충훈부·사옹원·상의원 등에서 요직을 역임하고, 도총관에 이르렀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이황(李滉)·조식(曺植)·정렴(鄭𥖝)·이이(李珥)·성혼(成渾) 등 당대의 석학들과 교유하였으며, 만년에는 선조의 자문 역할을 하였다.

글과 글씨에 능하여 산릉(山陵)의 지(誌)와 궁전의 액(額)으로부터 사대부의 비갈(碑碣)에 이르기까지 많은 글과 글씨를 남겼다. 송인은 특히 오흥(吳興)의 필법을 받아 해서를 잘 썼다고 한다. 저서로는 『이암유고(頤菴遺稿)』 12권 4책이 있다. 그의 글씨는 양주의 덕흥대원군신도비(德興大院君神道碑)·송지한묘갈(宋之翰墓碣), 남원의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 부안의 김석옥묘비(金錫沃墓碑), 여주의 김공석묘갈(金公奭墓碣), 남양의 영상홍언필비(領相洪彦弼碑), 광주(廣州)의 좌참찬심광언비(左參贊沈光彦碑) 등에 전한다.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참고문헌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대동서법(大東書法)』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이암유고(頤菴遺稿)』

  •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택당집(澤堂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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