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목활자본. 1898년 후손 기영(基永)이 편집, 간행하였다. 책머리에 신헌구(申獻求)의 서문이 있고, 책끝에 기영·윤영(胤永)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 있다.
권1·2에 세계(世系), 연보(年譜), 시 184수, 권3에 책(策) 1편, 소(疏) 1편, 계(啓) 2편, 서(書) 2편, 문(文) 2편, 권4는 부록으로 사제문 1편, 제문 3편, 만장 24편과 저자의 행장과 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책은 1611년(광해군 3) 문과별시의 대책(對策)으로 당시의 국정의 병폐와 모순점을 예리하게 지적, 비판한 것이며, 상소문은 노모의 봉양을 위하여 감사직을 사퇴한다는 사직소이다.
「이금국회답사재심양계(以金國回答使在瀋陽啓)」는 정묘호란 때 금나라에 포로로 간 사람들이 본국으로 도망해오는 일이 빈번해지자 이에 대한 금나라의 항의가 매우 강력하므로, 저자가 그 수습책임을 맡아 심양에 가서 왕에게 올린 계이다.
「이접반사재가도장계(以接伴使在假道狀啓)」는 1634년(인조 12) 중국사신 심세괴(沈世魁)의 접반사로 가도(假島)에 파견되었을 때 올린 장계이며, 서(書)도 가도에 있을 적에 심세괴에게 보낸 서신이다.
문으로는 「기우제문(祈雨祭文)」과 「망양정중수권선문(望洋亭重修勸善文)」이 있으며, 강세황(姜世晃)이 지은 묘갈명이 첨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