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치헌

  • 예술·체육
  • 인물
  • 현대
해방 이후 동방연서회 창설회원, 국전 서예부 심사위원 등을 역임한 서예가.
이칭
  • 경태(景泰)
  • 소남(蘇南)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63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7년(고종 24)
  • 출생지충청북도 옥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응현 (서예가)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해방 이후 동방연서회 창설회원, 국전 서예부 심사위원 등을 역임한 서예가.

내용

자는 경태(景泰), 호는 소남(蘇南). 충청북도 옥천 출생. 할아버지는 천(薦)으로 경연관(經筵官) 동부승지를 역임한 달수(達洙)이며, 아버지는 청도군수를 지낸 병종(秉琮)이다.

그는 일찍이 서울에 와서 서법에 뜻을 두고 한말의 제가(諸家)와 교유하면서 정진하여 예서와 초서에 대성하였다. 젊어서는 경성부청(京城府廳 : 서울시청)에 근무한 적이 있으며, 자신의 서예를 자랑한 적이 없었다.

광복 후 국전 서예부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 창설회원의 일원으로 동회전(同會展)에 출품하면서 서예동호인과 후진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바 있다.

송치헌은 예서(隷書)에는 한예(漢隷)에 치중하였으나 주로 조전비(曹全碑)와 공주비(孔宙碑) 및 봉용산송(封龍山頌) 등 원필예(圓筆隷)에 주력하여 당대의 누구도 추종할 수 없을만한 경지에 이르렀고, 또 초서(草書)로는 특히 중국 당나라 서가(書家)인 손과정(孫過庭)의 『서보(書譜)』를 득력(得力)하여 탈속의 높은 계경(界境)을 개척하였다.

일생 동안 서법에 정진하면서 자신의 경지를 과시하거나 또는 속된 부류들과 상종함이 없이 빈한한 생애를 끌어나가면서도 모든 것에 초탈한 은자(隱者)로서 생을 마쳤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