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우약(愚若), 호는 의재(毅齋). 경상남도 합천 출신. 아버지는 송근배(宋根培)이며, 어머니는 신창맹씨(新昌孟氏)로 맹봉렬(孟鳳烈)의 딸이다. 송근례(宋根禮)에게 입양되었으며, 곽종석(郭鍾錫)의 문인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그 폐기를 주장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의병을 일으키기 위하여 노성(魯城)에서 최익현(崔益鉉) 등과 모임을 가졌고, 궐리사(闕里祠)에서 선성(先聖)에 고하는 글을 지었다.
『중용』·『근사록』·『통서(通書)』 등을 즐겨 읽었고, 50여년간 책상을 떠나지 않고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항일정신이 투철하여 1919년 그의 스승인 곽종석을 방문하고 파리의 만국평화회의에 독립호소문을 보내는 데 찬동하고 집에 돌아와 얼마 안 되어 죽었다. 저서로는 『의재문집(毅齋文集)』 8권 4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