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부록 합3책. 고활자본. 1832년(순조 32) 손자 병주(秉柱)가 편집,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책 끝에 후손 성주(星柱)의 지(識)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장서각 도서·규장각 도서·고려대학교 도서관·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등에 있다.
권1~3에 사(辭) 1편, 시 518수, 권4에 소 13편, 계사(啓辭) 3편, 전문(箋文) 4편, 권5에 서(序) 4편, 기(記) 6편, 제발(題跋) 7편, 묘표 1편, 행장 2편, 권6에 잡저 10편과 부록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자신의 일상적인 느낌을 시로 표현하는 데 능숙한 솜씨를 보이고 있다. 전국의 명소를 찾아다니며 많은 기행시를 남겼으며, 1749년(영조 25) 북경(北京)에 다녀온 뒤 지은 76수의 시도 훌륭한 기행시라 할 수 있다.
「술회(述懷)」는 무려 1,351구에 이르는 장편시로 자신의 일생을 술회한 자서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영사차이백(咏史次李白)」 또한 장편 서사체로 「삼황수출(三皇首出)」·「오제계작(五帝繼作)」·「팔년치수(八年治水)」 등 59수의 시로 이루어졌다. 내용은 고대부터 명나라까지의 중국 역사 중에서 역사적 사건을 골라 59개의 시제(詩題)로 택한 것이다.
「사지평소(辭持平疏)」 등 상소와 계사(啓辭)는 그가 사간으로 있을 때 올린 것으로 신임사화 당시 소론의 주역인 조태구(趙泰耉)·유봉휘(柳鳳輝)·이광좌(李光佐) 등의 관작 추탈을 청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기에는 자신의 당호인 지족당의 내력을 적은 「지족당기(知足堂記)」가 있다. 잡저의 「연경잡지(燕京雜識)」는 서장관으로 연경에 다녀올 때 기술한 것으로 인물·풍토·용전(用錢)·전부(田賦)·관질(官秩) 등의 견문을 광범위하게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