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는 1905년 노동이민이 시작되어 한인사회가 형성되었고, 이 때 이주한 200여 명의 광무군인(光武軍人) 출신이 주축이 되어 1909년경부터는 그 곳 한인사회에 상무주의(尙武主義)를 표방한 군사운동이 일어났다.
유카탄반도의 티치·작골·소실 세 곳에 모인 광무군인 출신들은 위국헌신(爲國獻身)을 맹세하고 여가시간을 이용하여 군사훈련을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풍조는 멕시코 전한인사회로 확산되었으며, 그 결정체로 1910년 11월 17일 무관양성학교가 설립되었다.
학생수는 118명이며, 광무군인 출신으로 군사학에 밝은 이근영이 교장을 맡아 엄정한 군사교육을 실시하였다. 이 학교는 멕시코혁명의 발발로 1913년 3월에 폐교되고 말았으며, 학생들은 혁명의 와중에 가족과 함께 피난하거나 참전하여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미주 본토의 헤스팅스소년병학교 및 하와이의 국민군단사관학교와 더불어 북미 한인 사회에서 무관양성을 표방한 대표적 학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