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책(181면). 연대는 미상이나 한말로 추정된다. 흔히 시조를 ‘시절가조(時節歌調)’에서 나온 말로 풀이하는데, ‘시여’라는 명명(命名)은 단순한 시절가조를 뛰어 넘은 순수문학적 의미로서의 시(詩)이면서 ‘여가(餘暇)’나 ‘여기(餘技)’로서의 문학임을 뜻한다.
시조는 시절만을 읊어대는 시조(時調)로서의 생명은 이미 끝났음을 표제로써 대변하고 있다. 이 시조집에 수록된 작품은 시조 592수와 한역시 및 한시 34수, 기(記) <고산구곡담기 高山九曲潭記> 1편, 그리고 기타 작품 및 작가에 대한 해설 몇 편으로 되어 있다.
수록 작가는 최충(崔冲)·이존오(李存吾)·길재(吉再)·맹사성(孟思誠)·조광조(趙光祖)·이이(李珥)·송시열(松時烈)·이하조(李賀祖) 등 모두 75명이며, 시조 제목이 있는 작품은 관암(冠岩)·취병(翠屛)·송애(松崖)·산중신곡(山中新曲)·자규(子規) 등 34편이다.
≪시여≫의 편저는 처음에 전통 성아곡인 가곡명, 중대엽, 삭대엽의 시조작품과 그 다음 고려 말의 시조작가와 작품, 그리고 본조(本朝)라 하여 조선시대의 시조작가와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편저는 분류의 중복이나 중복 작가의 불규칙적인 시대순 등으로 보아 그다지 체계적인 편은 아니다.
김선풍 소장본(金善豊所藏本)과 이씨본(李氏本) 두 종류가 있다. 그간 국문학계에는 편자와 편찬연대가 미상인 이씨본만이 간단히 소개되었는데, 김선풍본과는 표제명만이 동일할 뿐 전혀 별개의 가집이다.
우선 두 ≪시여≫를 대비해보면, 전자가 편자와 편찬연대가 불확실한 데 반하여 후자는 가집 맨 뒷부분에 ‘乙丑七月七日宋泰運書抄(을축칠월칠일송태운서초)’라고 명기되어 있다.
또, 심재완(沈載完)이 그의 정본(定本) ≪시조대전 時調大全≫에 총 170수의 이씨본 ≪시여≫를 참조, 인용하고 있는데, 김선풍본은 590수에 달하여 이씨본과 다른 이본임을 알 수 있다.
심재완이 그의 ≪고시조천수선 古時調千首選≫에서 정리한 대교(對校) 몇 부분만 살펴보면, 시조번호 9·12·107 등이 이씨본에는 있으나 김선풍본에는 없고, 김선풍본은 종장이, “그려도 ᄒᆡᄋᆡᄃᆡᄅᆡ라 가는 ᄯᅳᆺ을 닐러라.”라고 되어 있는데 이씨본에는 “져님아 ᄋᆡᄃᆞᆯᄭᅩᄋᆡᄃᆞᆯᄂᆡ라 가는 ᄯᅳᆺ을”까지만 기록되어 있어 가사내용 뿐 아니라 종장 3자를 생략하고 있는 시조가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19세기 가집 중 ≪남훈태평가≫·≪가요≫·≪시쳘가≫와 이씨본 ≪시여≫ 등에 종장 말구(末句)를 생략하고 있는데 이것은 가집을 음악적인 실용성을 중요시하여 편찬했으며, 또 의식적으로 가곡창보다는 시조창을 위주로 편찬하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당시 분위기는 시조의 창자(唱者) 범위가 넓어져 대중성을 띠게 된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선풍본의 체재는 ≪청구영언≫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데, 서(序)와 발(跋)은 없지만 초중대엽(初中大葉)·이중대엽(二中大葉)·삼대중엽(三大中葉)·북전(北殿)·초삭대엽(初數大葉)·이삭대엽(二數大葉)·열성어제(列聖御製)·여말(麗末)·본조(本朝)·부만횡엽(附蔓橫葉)·연대결고(年代欠考)·여항(閭巷)·방류(傍流)·기류(妓流)·습유(拾遺)·삼삭대엽(三數大葉)·낙희사(樂戱詞)·만횡엽(蔓橫葉)순으로 되어 있어 양자가 엇비슷한 체재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삼대중엽’에 할주(割註)로 ‘견청구영언(見靑丘永言)’이라고 표기해 놓은 점으로도 ≪청구영언≫을 참조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체재의 순차만이 ≪청구영언≫과 비슷할 뿐, 예시된 시조는 모두 다른 점이 특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