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인경(隣卿), 호는 교봉(郊峯). 신적(申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중형(申仲衡)이고, 아버지는 신보(申溥)이며, 어머니는 조인보(趙仁輔)의 딸이다.
1583년(선조 16)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591년 예조좌랑에 올랐으나 시관(試官)으로서 섬세하지 못하여 실수가 많다 하여 파직당하였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희적(鄭熙績)과 더불어 소모관(召募官)으로 육진(六鎭)에 들어가 선유(宣諭: 임금의 훈시를 널리 알림)하였다. 특히, 왜란중에 외교문장에 능하다 하여 1593년에는 명나라 황제에게 보내는 주청사(奏請使)의 자문(咨文: 중국과 내왕하는 공문서)을 이로(李魯)·정경세(鄭經世)·신흠(申欽) 등과 짓기도 하였다. 한편, 접반사(接伴使) 윤선각(尹先覺)을 수행하기도 하였으며 예조정랑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