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함양군수, 영해부사, 진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문보(文甫)
  • 취은(醉隱)
인물/전통 인물
  • 본관평산(平山)
  • 사망 연도1708년(숙종 3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함양군수|영해부사|진주목사
  • 출생 연도1659년(현종 즉위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광용 (성심여자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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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함양군수, 영해부사, 진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문보(文甫), 호는 취은(醉隱). 할아버지는 순안현감 신종근(申從謹)이고, 아버지는 무공랑(務功郎) 신찬연(申纘延)이며, 어머니는 이척(李陟)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20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684년(숙종 10)에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98년에 죽음을 각오하고 소(疏)를 올려 세조에 의하여 죽은 노산군(魯山君)을 복위시킬 것과, 중종반정 때 역적의 딸이라는 이유로 폐출당한 중종의 비(妃) 신씨(愼氏)를 복위시킬 것을 주장하여, 노산군에게는 단종이라는 존호가 올려졌고 묘소는 장릉(莊陵)으로 추봉되었으나 신비(愼妃)의 복위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701년에 함양군수, 1704년에 영해부사, 1706년에 진주목사를 역임한 뒤 1708년에 병사하였으며 교하(交河)에 장사지냈다. 그 뒤 1739년(영조 15)에 김태남(金台南)의 상소에 의하여 신비가 단경왕후(端敬王后)로 복위되고 묘소가 온릉(溫陵)으로 추봉되자, 이듬해에 단경왕후의 복위에 관한 지난날의 공로로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어려서 정태화(鄭太和)의 집에 기거하면서 학문을 익혔다. 저서로는 『취은집(醉隱集)』4권이 전하여진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취은집(醉隱集)』

  • - 『이계집(耳溪集)』

  • - 『평산신씨문헌록(平山申氏文獻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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