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급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동인 계열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려 6품계를 하사받은 학자.
이칭
  • 중준(仲峻)
인물/전통 인물
  • 본관평산(平山)
  • 사망 연도1592년(선조 25)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43년(중종 3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광용 (성심여자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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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동인 계열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려 6품계를 하사받은 학자.

개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중준(仲峻). 전첨(典籤) 신말평(申末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기묘명현인 신상(申鏛)이고, 아버지는 별검(別檢) 신화국(申華國)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품성이 강직하여 의론이 준엄하였으며, 총명이 남보다 뛰어났고, 특히 사학(史學)에 밝았다고 한다. 1583년(선조 16) 붕당간의 조정을 자임한 병조판서 이이(李珥)에게 불만을 가진 동인계열의 홍혼(洪渾) · 우성전(禹性傳) · 김응남(金應南) · 박근원(朴謹元) 등이 이이 · 성혼(成渾) · 박순(朴淳)의 작은 과실을 사림의 공론으로 내세워 공격하자, 신급은 유학(幼學)의 신분으로서 이를 사악한 논의로 단정하고 이는 사림의 화를 불러 일으킨다고 탄핵하는 소를 올렸다. 이 상소에 대해 선조는 충성으로 나라에 보답한 사기(士氣)의 표상이며, 특히 당시 여진족 니탕개(尼蕩介)의 침입을 격퇴한 친동생 신립(申砬)의 기상과 상통한다는 칭찬의 비답(批答)을 내리고, 6품의 녹을 하사하여 격려하였다.

그 뒤 정권을 장악한 서인의 지도자인 정철(鄭澈)에 의하여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추천되었으나 거절하고 재야에서 처사(處士)로 생활하였다. 임진왜란 때 적을 피하여 도망하다가 이천에서 왜적을 만나 쫓기자 어머니와 함께 절벽에서 투신하여, 충주에서 전사한 동생에 뒤이어 죽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장암집(丈巖集)』

주석

  • 주1

    : 신급의 상소 : 『선조실록』 17권, 1583년(선조 16) 8월 11일. "유학 신급이 삼사의 간특함을 극론하고 홍혼 등을 지적하니 충성스럽다고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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