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5월 19일부터 12월 31일까지 총 191회에 걸쳐 『황성신문』에 연재되었다. 모두 7편의 독립적인 이야기들을 묶은 연작소설이다.
7편의 이야기 가운데 특히 봉건적 질곡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두 건달의 일생을 생생히 그린 넷째 이야기와 일곱째 이야기는 우리나라 건달소설(picaresque)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넷째 이야기는 봉이전승을 소설화한 것으로 이 전승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원제는 ‘인홍변서봉(仁鴻變瑞鳳) 낭사승명관(浪士勝名官)’이다. 한국의 건달전승을 대표하는 평안도 지방의 봉이이야기가 이미 1906년에 채록되어 소설화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 주목된다.
오늘날의 봉이전승에는 생존시기와 가계가 불분명한 데 비하여, 이 작품에서는 봉이가 인조 때 생존한 인물로, 가계 또한 조농부상(祖農父商)으로 밝혀져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봉이전승에는 봉이를 김선달로 부름으로써 실패한 엽관운 동자로 그린 데 반하여 이 작품에서는 건달의 삶에 충실하다. 이 작품에 형상화된 봉이의 삶은 몇 개의 고비로 나뉜다.
① 자기의 능력이 봉건체제 속에서 제대로 발휘될 수 없음을 깨달은 봉이는 과거시험을 팽개친 채 집을 떠나 방랑한다. 이 시기에 봉이는 낭사(浪士)라는 자호(自號)에서 보듯 방외인(方外人)의 삶을 추구한 것이다. ② 굶주리는 처자 때문에 귀향하면서 봉이는 건달행각에 나서 권력과 부를 조롱함으로써 봉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③ 평양서윤에게 잡혀가면서 봉이는 백성을 대변하여 권력과 대결한다. ④ 지배층의 회유를 거절하고 마지막에는 온 집안 식구를 데려가 잠적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일곱째 이야기는 충주 오진사의 노비 어복손(魚福孫)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주인을 골탕먹이는 어복손은 「춘향전」과 「배비장전」의 방자와 비슷한데, 어복손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주인집 딸을 농락하고 도주하여 벼슬에 오르나 결국 군수에게 잡혀 파멸한다.
봉건시대의 계급 모순을 첨예하게 제기하고 있는 김봉이와 어복손이야기는 근대문학 전반에 평민문학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귀중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