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익재(益哉), 호는 농산(農山). 대를 이어 살아온 곳은 구례이다. 아버지는 신제모(申濟模)이며, 어머니는 여산송씨(礪山宋氏)로 송인채(宋麟采)의 딸이다. 임헌회(任憲晦)의 문인이며, 일찍부터 과거 공부에 뜻을 두지 않고 경학과 성리학 연구에 전력하였다.
1880년(고종 17) 남원으로 이사하여, 그 곳에서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하였다. 경사자집(經史子集)에 박통(博通)하였으며, 이기설(理氣說)에 있어서는 이발기발(理發氣發)을 주장하여 이황(李滉)의 견해를 지지하였다. 송병선(宋秉璿)·전우(田愚)와 서신교환을 통하여 학문에 관한 토론을 많이 하였다. 저서로는 『농산문집(農山文集)』 1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