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국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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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문헌
당나라의 고음이 책봉사 귀숭경의 종사관으로 신라에 와서 보고 들은 것을 수록한 견문록.
이칭
이칭
-
문헌/고서
간행 시기
768년 무렵
편저자
고음
권책수
1권
내용 요약

『신라국기(新羅國記)』는 당나라의 고음이 책봉사 귀숭경의 종사관으로 신라에 와서 보고 들은 것을 수록한 견문록이다. 현재 전하지 않고 있다. 『신라국기』의 기록 가운데 일부를 당나라의 영호징(令狐澄)이 『정릉유사(貞陵遺事)』에 실었고, 『신라국기』 기록이 포함된 『정릉유사』의 일문(逸文)이 『감주집(紺珠集)』과 『설부(説郛)』에 소개되었다. 『신라국기』에는 골품제와 화랑제, 망덕사(望德寺) 관련 내용이 기술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

목차
정의
당나라의 고음이 책봉사 귀숭경의 종사관으로 신라에 와서 보고 들은 것을 수록한 견문록.
구성과 내용

『신당서(新唐書)』주1 예문지(藝文志)에 고음(顧愔)이 지은 『신라국기』 1권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음은 중국 쑤저우[蘇州] 하이옌현[海鹽縣] 헝산[橫山] 사람으로 감찰어사(監察御史)를 역임하였다.

768년(신라 혜공왕 4)에 당나라에서 혜공왕을 책봉하는 주2으로 파견된 귀숭경(歸崇敬)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신라를 예방하였다가 귀국한 후에 신라의 인물과 풍습 등을 수집하여 『신라국기』를 저술하였다. 『신라국기』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당나라의 주3이 『신라국기』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정릉유사(貞陵遺事)』[『대중유사(大中遺事)』라고도 함]에 실었다. 송나라 주승비(朱勝非)의 『감주집(紺珠集)』과 원나라 도종의(陶宗儀)의 『설부(説郛)』에서 『신라국기』에서 인용한 기록이 포함된 『대중유사(大中遺事)』의 일문(逸文)을 소개하였다.

두 문헌에 의거하여, 『신라국기』에 국왕의 족속은 제1골, 나머지 귀족은 제2골이라 불렀던 사실, 755년(경덕왕 14)에 높이가 13층인 망덕사(望德寺)의 두 탑이 크게 흔들렸던 사실, 귀족 자제 중 아름다운 이를 택하여 주4이라 부르고 나라 사람들이 높이 받들어 섬겼던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해동역사(海東繹史)』에 『신라국기』에서 신라의 산물로 잣〔五粒子〕을 소개하였다고 전하나, 어느 문헌에서 인용하였는가를 밝히지 않았다.

『신당서』 신라전(新羅傳)의 신라 풍속 관련 기록 가운데 일부는 『신라국기』에서 인용하였다고 이해한다. 『삼국사기』 찬자는 영호징이 『신라국기』를 찬술하였다고 잘못 기술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당서(新唐書)』

논문

小宮秀陵, 「한국 고대국가의 「국기(國記)」에 대하여-편찬과 그 배경을 중심으로-」(『동서인문학』 50, 계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5)
岡田英弘, 「新羅國記と大中遺事について」(『조선학보』 2, 대한조선학회, 1951)
주석
주1

『신당서(新唐書)』는 북송(北宋) 인종(仁宗)의 조칙에 의해 1044년 송기(宋祁) · 범진(范鎭) · 여하경(呂夏卿)이 찬수를 시작하여, 왕주(王疇) · 송민구(宋敏求) · 유희수(劉羲叟) 등이 참여하고, 마지막으로 구양수(歐陽修)가 마무리하여 1060년 재상 증공량(曾公亮)에 의해 진상된 당왕조(唐王朝)에 대한 기전체(紀傳體) 정사(正史)이다. 전체가 본기 10권, 지 50권, 표 15권, 열전 150권, 도합 22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대 후진(後晉) 시절에 편찬된 『구당서(舊唐書)』와 대비하여 『신당서』로 불린다.

주2

임금이나 국가의 명령을 받고 외국에 사절로 가는 신하    우리말샘

주3

당나라 의주(宜州) 출신의 관료로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역임하였고, 『정릉유사(貞陵遺事)』를 지었다.

주4

신라 때에 둔, 청소년의 민간 수양 단체. 문벌과 학식이 있고 외모가 단정한 사람으로 조직하였으며, 심신의 단련과 사회의 선도를 이념으로 하였다.    우리말샘

집필자
전덕재(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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