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37만 9300㎡. 무덤의 지름은 21.2m, 높이는 5m이다. 효공왕의 성은 김씨, 이름은 요(嶢)이며, 신라 제49대 헌강왕의 서자로 어머니는 의명왕태후(義明王太后)이다.
897년에 왕이 되어 912년에 승하하였으며, 15년간 왕으로 있으면서 기우는 국세를 바로잡지 못하고 후백제의 견훤, 후고구려의 궁예의 공략에 국토를 빼앗겼다. 죽은 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사자사(獅子寺)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하였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사자사 북쪽에서 화장하고 유골을 구지제(仇知堤)의 동산 옆에 묻었다고 하여 이곳으로 비정하고 있다. 이와 달리 제7대 일성왕릉을 효공왕릉으로 보는 설도 있다.
무덤의 외부 모습은 흙으로 덮은 둥근 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서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사용한 3, 4개의 호석(護石)이 보이고 있어 원래는 밑둘레를 따라 자체적으로 보호석렬(石列)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민묘보다 규모가 조금 크게 보이는 외에 아무런 장식물이 없는 매우 단순한 형태의 무덤이다. 현재 이 무덤의 남쪽에 절터가 있어 사자사의 터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