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 ( )

목차
관련 정보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 비각 전경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 비각 전경
서예
유적
국가유산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에 있는 고려후기 에 건립된 사적비.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驪州 神勒寺 大藏閣記碑)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천송동, 신륵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에 있는 고려후기 에 건립된 사적비.
내용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383년(우왕 9) 건립. 높이 1.33m. 신륵사에는 원래 극락보전(極樂寶殿) 서쪽 언덕에 대장각이 있었는데, 그것은 고려 말의 이색(李穡)과 승려 나옹(懶翁)의 문도들이 발원하여 경률론(經律論) 삼장(三藏) 즉 대장경을 인출(印出)·수장하던 집이었고, 이 비는 대장각의 조성에 따른 여러 가지를 기록한 석비이다.

『동국여지승람』권7 여주목불우조 (驪州牧佛宇條)에 신륵사의 다른 이름은 보은사(報恩寺) 또는 벽사(甓寺)라는 것과 나옹이 일진당(日眞堂)을 세우고 대장각이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즉 이색은 선왕 현릉(玄陵)의 자복(資福)과 아버지 이곡(李穀) 및 어머니의 추복(追福)을 빌고자 나옹의 문도와 함께 발원하였고 이숭인(李崇仁)에게 명하여 1380년(우왕 6) 2월부터 만들게 하였다. 비문은 이숭인이 짓고 권주(權鑄)가 정간선을 긋고 자경 2㎝의 해서로 썼다. 권주의 글씨에 대하여 『서청(書鯖)』에는 ‘太古庵碑字 類虞永興(태고암비자 유우영흥)’이라 하였다.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는 장방형 복련대석(覆蓮臺石)과 옥개석(屋蓋石)으로 간단하게 변화되었고, 비신(碑身)의 보전을 위하여 몸체 양쪽을 돌기둥으로 단단히 지탱하고 있다. 이것은 이 곳에 앞서 세워진 「여주신륵사보제존자석종비」(1379)와 같은 형식이다.

현재 몸체의 문면(文面)은 크게 파손되어 있어 전문을 판독할 수 없으나, 비음(碑陰: 비의 뒷면)에는 대장단월(大藏檀越) 사부중(四部衆)으로서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를 구분하여 그 성명이 열거되어 있다.

참고문헌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문화재대관』6 보물 4(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朝鮮金石總覽』(京城: 朝鮮總督府, 1919)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