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유고 ()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구혁모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22년에 간행한 시문집.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구혁모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22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22년 구교승(具敎承)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송철헌(宋哲憲)의 서문과 권말에 최익현(崔益鉉)과 이찬용(李瓚溶)의 발문이 있다. 서문에 이어 총목이 있고, 각 권 별로 차례가 있다.

서지적 사항

6권 3책.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에 시43수, 권2∼4에 서(書)6편, 잡저 7편, 권5에 서(序) 6편, 기(記) 4편, 발(跋) 3편, 설(說) 8편, 권6에 부록으로 설·기·제문·만사·행장·묘지명·묘표·묘갈명·유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대개 옛 벗에 대한 증별(贈別)·회억(懷憶), 산행(山行) 등이며, 권학·자경(自警)·훈계의 내용을 담은 시도 상당수 있다. 「대기송사(待奇松沙)」와 「억정일신재(憶鄭日新齋)」는 기우만(奇宇萬)·정의림(鄭義林)과의 교유를 읊은 것이다.

서(書) 가운데 「상연재선생(上淵齋先生)」은 스승 송병선(宋秉璿)에게 보낸 편지로 평소에 큰 군자를 만나고자 한 소망과 자기의 사상을 토론한 것이다. 최익현에게 보낸 「상면암최선생(上勉菴崔先生)」은 척사위정을 지지·찬양하고 당시 나라 안에서 일본 화폐가 유통되어 모리배들이 날뛰는 현실을 개탄하며 척양척왜의 소신을 밝힌 내용이다.

권2의 잡저에는 「연재선생어록(淵齋先生語錄)」 외에 기우만과 심성(心性)·이기(理氣)에 관하여 문답한 「송사문답(松沙問答)」 등이 있다.

권3·4의 잡저 중 「독서차기(讀書箚記)」는 『대학』과 『중용』을 독서하며 차록한 것이다. 「재거일기(齋居日記)」는 1886년 1월 1일부터 이듬해 9월 말까지 저자가 공부한 내용을 항목 별로 구분하여 기술한 것인데, 일상생활에 관한 내용은 들어 있지 않다. 「매골패문(埋骨牌文)」은 자손들에게 골패에 손대지 말라는 훈계문이다.

서의 「백수문서(白首文序)」에는 후량(後梁)의 주흥사(周興嗣)가 『천자문』을 밤사이에 짓고 머리가 희었다는 고사가 소개되어 있다.

집필자
이민식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