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신광호(申光浩). 황해도 연백 출신.
만주로 망명하여 1919년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같은 해 12월 초순 노령(露領) 시지미에서 김학섭(金學燮)·강병관(姜秉官)·문창학(文昌學)·강석훈(姜錫勳) 등 15명과 함께 임시대한독립군(臨時大韓獨立軍)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소총 1자루와 탄약 150여 발을 구입하고, 또 폭탄 2개를 가지고 1921년 1월 4일 함경북도 신건원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경찰을 사살했다.
그 해 11월 20일 혼춘(琿春)에서 일본경찰에 잡혀 1923년 5월 26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다. 1940년 3월 1일 신병으로 가출옥, 다시 동지를 규합하여 독립운동에 힘썼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