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응조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대한제국기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 · 판부사 ·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계전(桂田), 구암(苟菴)
  • 시호문경(文敬)
  • 유안(幼安)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평산(平山)
  • 사망 연도1899년(고종 36)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04년(순조 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항래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4년 0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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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 · 판부사 ·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유안(幼安), 호는 계전(桂田) · 구암(苟菴).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신상현(申常顯)의 아들이다. 대유학자 홍직필(洪直弼)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52년(철종 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 · 이조정랑 · 부제학 등을 역임하였고, 1866년에 이조참판 · 대사헌, 1871년에 강원도관찰사, 1873년 형조판서 · 이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예조판서가 되었다.

1882년 7월 판부사(判府事)로 있으면서 왜양일체(倭洋一體)의 처지에 서서 사학(邪學)과 양술(洋術)을 배격하였는데, 특히 인천개항은 삼남과 서북의 이권을 침탈당할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군사 · 지리상의 요지이기 때문에 최대의 우려가 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서양세력을 배척하고 수교 및 통상을 제한하려는 척사적 처지를 정책적 측면에서 주장하였다.

임오군란 이후, 재집권하게 된 대원군에 의하여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뒤에 좌의정에 올랐으며, 연로하여 퇴임한 뒤에는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저서로는 『구암집』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일성록(日省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한국사―최근세편·현대편―』 (이선근, 진단학회, 1961·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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