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헌, 이조참판,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86년 부응교로 있을 때 또다시 문과중시에 장원하여 과거제도가 생긴 이후 세 번이나 장원을 한 것은 처음이라며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 해에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으로 초배(超拜)되었고, 『여지승람』을 정정하여 『동국여지승람』으로 다시 찬술해내는 데 참여하였다. 이듬해 그 공으로 왕으로부터 녹피(鹿皮)를 하사받았으며, 왕명으로 요동(遼東)에 가서 한어(漢語)를 습득하고 돌아왔다.
1487년 홍문관직제학을 거쳐 이듬해 부제학이 되었으며, 이듬해 동부승지가 된 뒤 예조참의 · 좌승지 · 우승지 · 도승지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491년 대사헌으로 있을 때 북쪽 오랑캐 침입 사건에 관한 어전회의 중에 영의정을 모욕한 죄로 파면되었으나, 얼마 뒤 다시 등용되어 도승지 ·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병조 · 예조 ·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494년 경기도관찰사로 나갔으며, 이듬해 중앙으로 들어와 예조참판 겸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로 있으면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496년(연산군 2) 병환을 무릅쓰고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인 1497년에 돌아오던 중에 개성에서 죽었다. 관후(寬厚)한 장자의 풍모를 지녔으며, 문장과 시 · 글씨에 뛰어났다. 저서로 『삼괴당집』이 있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매계집(梅溪集)』
- 『해동잡집(海東雜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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