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철수 ()

국방
인물
해방 이후 제10전투비행전대의 편대장을 역임한 군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6년
사망 연도
1951년
출생지
경상남도 양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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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제10전투비행전대의 편대장을 역임한 군인.
개설

경상남도 양산군 하북면 박주리 551변지에서 출생. 한국전쟁시 대위로써 공군 제1전투비행단 제10전투비행전대의 편대장으로 참전하여 전사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신철수 대위는 일본 효고(兵庫)에서 공립국민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일본 다치아라이(太刀洗) 육군비행학교를 졸업한 뒤, 1949년 6월 13일 조종하사관으로 항공기지 사령부에 입대하여 L-형 항공기로 연락임무 등을 수행하였다.

그 뒤 1950년 4월 25일에는 소위로 임관하고 공군 보급창에서 복무하다가, 1951년 4월 1일에 공군 비행단으로 전속되어 F-51 전폭기에 관한 교육을 받고 동년 10월 23일에 처음으로 원산작전에 참가하였다. 이 때부터 적의 건물·철도·교량·차량·보급물 집적소·포진지·병력 집결소 등을 위험을 무릅쓰고 공격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1년 11월 9일의 화천지역 공격시에는 날개 연료 탱크에 적탄을 맞았고, 그 다음날의 산아현리 지구 공격에서도 수평안전판에 적탄이 명중하였으며, 또 같은 달 24일의 패산리(貝山里) 지역 출격 공격 중에는 후랩에 적의 총탄이 명중되는 등 여러차례 위험한 고비가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불퇴전의 기상으로 분전 중이던 1951년 12월 15일, 금성 북방 적진을 향하여 저공으로 기관총 소사를 가하던 중 적의 대공포에 맞아 기체와 함께 적진으로 돌입하여 최후를 마쳤다. 전사후 소령으로 추서되었으며, 을지무공훈장, 은성화랑무공훈장, 공비토벌기장, 대통령 수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문헌

『韓國戰爭史』 7(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77)
『공군사』 제1권
『항공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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