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중용(仲容). 신숙주(申叔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함길도관찰사 신면(申㴐)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신용개(申用漑)이며, 어머니는 정국공신(靖國功臣) 박건(朴楗)의 딸이다. 부인은 임맹영(任孟瑛)의 딸이다. 이목구비가 그림과 같아 신선의 풍자가 있었다.
중종반정 때 아버지와 같이 공을 세워서 선전관이 되었고, 1507년(중종 2)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10년 장흥고주부(長興庫主簿)·사헌부감찰이 되었고, 이 후 공조·호조·형조의 낭관을 거쳤다. 이 시기에 한동안 유자광(柳子光)의 당여로 지목되어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이 후 1521년부터 배천·선산·광주(光州)·광주(廣州)·진주 지역의 수령을 역임하면서 관직에 충실하여 사사로운 일을 엄금하였으므로 백성을 잘 다스린 수령(守令)으로 표창되기도 하였고, 일반행정실무에 밝아서 평시서(平市署)·내자시·군자감·장례원·사도시(司䆃寺)·사섬시(司贍寺)의 행정관료로 크게 활약하기도 하였다.
1528년 대동찰방(大同察訪)으로서 사행(使行)시의 비밀매매행위를 금단하기도 하였고, 1540년 성절사(聖節使)로서 중국에 가서 그 곳 사정을 관찰, 보고하기도 하였다. 1543년에 상호군(上護軍)으로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