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대여(大汝). 심평(沈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심후준(沈厚俊)이고, 아버지는 심해(沈澥)이며, 어머니는 남극관(南克寬)의 딸이다. 심진현(沈晉賢)의 형이다.
성균관의 유생으로 수학하고 있던 1770년(영조 46)에 청주의 한유(韓鍮)가 도끼를 들고 와 대궐 앞에 엎드려 간신 홍봉한(洪鳳漢)을 참하라는 상소를 하였다. 이로 인하여 홍봉한은 영의정의 자리에서 물러났고 한유도 흑산도에 유배당하였다. 이때 한유와 관계를 맺고 있던 유생들 가운데 심의지(沈義之)·김용갑(金龍甲)·심급(沈鈒) 등과 함께 처벌을 받아 본향으로 쫓겨났다.
그 뒤 177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정언(正言)을 거쳐, 교리(校理)로 임명되었으나, 다시 한유의 사건이 거론되어 문외출송(門外黜送)되었다. 1780년 다시 지평(持平)에 제수되었으며, 같은 해 정사 김익(金熤), 부사 이숭우(李崇祐)와 함께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임명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