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사진(士進), 호는 만사(晩沙). 사인(舍人) 심순문(沈順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통례(通禮) 심달원(沈達源)이고, 아버지는 경기도관찰사 심전(沈銓)이다. 어머니는 이한(李翰)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진사가 되고, 1580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에 나아갔다. 1586년 감찰이 된 뒤 예조좌랑·호조좌랑과 경상·경기 양도의 도사를 거쳐, 형조정랑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호종하는 도중에 정언(正言)·지평(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진주사(陳奏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구원을 청하고 돌아와 승지·춘천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596년 호조참의가 되었다가 호조참판으로 승진하였다. 이때 서울에 주둔한 명나라 군대의 행패가 심해지자 이를 명나라 경리(經理) 양호(楊鎬)에게 항의하고, 그 시정을 촉구하다 파직되었다. 1600년 한성부우윤으로 비변사유사당상을 겸하였다. 죽은 뒤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고,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으로 추록되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