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령전투

  • 역사
  • 사건
  • 조선 후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조선이 쌍령에서 청나라 군대와 벌인 전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장희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조선이 쌍령에서 청나라 군대와 벌인 전투.

내용

쌍령은 지금의 경기도 광주시에서 동으로 16㎞ 거리에 있는 크고 작은 두 개의 고개를 가리킨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남한산성이 포위, 고립되자 제도(諸道)의 감사나 병사가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구원하러 남한산성으로 향하였다.

이 때 경상좌병사 허완(許完)과 경상우병사 민영(閔栐)도 군사를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쌍령에서 청군과 맞부딪치게 되었다. 허완은 미처 적과 접전하기도 전에 일군이 패하여 전사하였으며, 민영은 휘하의 군사를 독전하여 오랜 시간 사력을 다하여 싸웠으나 마침내 힘이 다하여 일군이 대패하고 자신도 전사하였다.

충청감사 정세규(鄭世䂓)가 용인 험천(險川)에서 패한 싸움과 함께 많은 전사자를 내었다. 숙종 때 허적(許積)의 건의로 예전 쌍령 전장에서 기우제를 지냈고, 영부사(領府事) 김수흥(金壽興) 등의 제언으로 전사자들의 혼령을 달래기 위하여 위령제를 지내기도 하였으며, 1734년(영조 10) 왕명으로 이 곳 쌍령전망처(雙嶺戰亡處)에 비를 세웠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