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1책. 석인본. 권두에 김종호(金鍾昊)의 서문과 권말에 정화술(鄭華述)의 발문이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인수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권1·2에 시 24수, 서(書) 7편, 파보통장(派譜通狀)·적거설(謫居說)·일기·서(序)·기(記) 각 1편, 제문 4편, 권3은 부록으로 만장 3수, 행장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의 「도황강마상구호(到黃岡馬上口呼)」에서는 말은 여위고 갈 길은 멀다고 고달픈 인생의 길을 비유하고,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갈 길에 방해가 될 뿐이니 애써 채찍질을 해서 목적지에 도착할 것을 강조하였다.
「적거설」은 단양에 귀양살이 하면서 있었던 일을 적은 것으로, 때로 지방의 선비들이 찾아와 시무를 이야기하고 학문과 예설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며 한가할 때 책을 읽어서 많은 지식을 쌓고 인생을 깨닫게 되었음을 기록하였다.
일기는 관직에 있을 때 직무와 관련된 일과 보고 들은 일, 처리한 일의 결과 등을 기록한 것으로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소한 사건과 직원 사이에 있었던 이해관계까지도 모두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상황을 고찰하게 한다.
「만학자서(晩學自序)」에서는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로 돌아와서 젊을 때의 공명이 지나고 나니 헛된 꿈이었음을 지적하고, 늦기는 하였어도 다시 학문에 뜻을 두고 연구를 시작하니 새로운 기분이 생겨나서 인생의 참뜻을 알겠다고 하였다.
이밖에도 하석홍(河錫洪)의 죽음을 애도한 「제하석홍문(祭河錫洪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