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안필승(安弼承), 필명은 추백(萩白). 경기도 안성 출생.
경성 제이고보를 중퇴하고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노문과(露文科)에서 수학하였다.
1920년대 말 도쿄의 무산자사(無産者社)와 연관을 가지면서 계급문학운동에 가담하였고, 1930년에 귀국하여 김남천(金南天)·임화(林和) 등과 함께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제2차 방향 전환을 주도하였다.
카프의 볼셰비키화 단계에서 발표된「프로예술의 형식문제: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의 길로」에서 프로문학의 창작방법론으로서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론을 내세웠는데, 이것은 프로문학의 창작방법에 대한 최초의 이론적 정초라는 의미를 지닌다.
1933년 이후 창작의 질식을 초래한 볼셰비키적 창작방법론에 대한 자기 비판이 제기되자, 추백이라는 필명으로「창작방법문제의 재토의를 위하여」를 발표하여 새로운 창작방법론으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소개한다.
이 글은 유물변증법적 창작방법론과 그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그간의 한국 프로문학에 대한 비판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1930년대 창작방법 논쟁의 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후 한동안 문학활동을 중지했던 그는 광복 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했다가 월북하였다.
중요 평론으로는 「프로예술의 형식문제」(조선지광 90∼91, 1930.3.∼6.)·「‘맑스’주의예술비평의 기준」(중외일보, 1930.4.19.∼5.30.)·「조직과 문학」(중외일보, 1930.8.1.∼2.)·「조선프로예술가의 당면의 긴급한 임무」(중외일보, 1930.8.16.∼22.)·「조선 プロレタリア예술운동약사」(사상월보 10, 1932.1.)·「1932년의 문학활동의 제과제」(중앙일보, 1932.1.11.)·「창작방법문제의 재토의를 위하여」(동아일보, 1933.11.29.∼12.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