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자원(子遠), 호는 환성재(喚醒齋). 아버지는 안여종(安汝宗)이다. 송준길(宋浚吉)의 문인이다.
1675년(숙종 1) 진사가 되고, 그 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학유(學諭)로 기용되어 송준길의 복작(復爵)·추증을 상소하였다. 지평(持平)을 거쳐 1684년 장령(掌令)이 되었다. 허견(許堅) 등 남인들이 복선군(福善君) 이남(李楠)을 추대, 반역을 꾀한다고 무고하여 경신대출척을 일으키게 한 김환(金喚)의 추국을 주장하였다. 정언(正言)·필선(弼善) 등을 거쳐 1694년 다시 장령이 되어, 민비(閔妃)의 폐비를 주동한 장희빈(張禧嬪)의 오빠 장희재(張希載)를 규탄하였다. 그 뒤 진주목사를 거쳐 1700년 종성부사가 되고 이어서 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