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보천(補天), 호는 보만당(保晩堂). 안경엄(安景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헌(安櫶)이고, 아버지는 안중현(安重鉉)이다. 어머니는 인동 장씨로 경흥창주부 장영(張𨥭)의 딸이다.
문장에 능하여, 젊어서 생원·진사에 뽑혔다. 1705년(숙종 31)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경연관(經筵官)이 되어 임금에게 진강(進講) 중 민폐를 진언하고 이의 구제책을 주청(奏請)하였다.
1722년(경종 2) 신임사화 때 김일경(金一鏡) 일파의 왕세제 연잉군(延礽君: 뒤의 영조)의 위해(危害) 시도가 있자, 세제를 옹호하여 소론의 미움을 샀다. 그 뒤 양산군수로 나아갔으나 사단(事端)이 생겨, 어사(御史) 박문수(朴文秀)의 탄핵을 받아 진주에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