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계홍(季弘). 좌참찬 안숭선(安崇善)의 현손이며, 안훈(安訓)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안우석(安友晳)이고, 아버지는 안임(安恁)이며, 어머니는 장령(掌令) 김영수(金永銖)의 딸이다.
1546년(명종 1) 식년시에서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가장 친하였던 교우 안명세(安命世)가 을사사화의 여파로 1548년에 처형당하자, 10년 가까이 은거하고 절조를 지켰다. 1556년(명종 1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주서(注書)가 되고, 1561년에 호조좌랑, 이듬해 병조좌랑 · 지평(持平), 1563년에 세자시강원사서(世子寺講院司書) · 경기도도사가 되었다.
이듬해 병조정랑 등을 거쳐 헌납(獻納) · 검상(檢詳) · 사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1567년(선조 즉위년) 집의(執義)가 되고, 1571년 홍문관직제학으로 지제교 겸 경연시강관(知製敎兼經筵侍講官)이 되었으며,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574년 좌부승지가 되고,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명나라 조정에서 이미 종계(宗系) 개정이 이루어져 책에 기록되었음을 알렸다. 1576년 황해도관찰사, 1583년 대사헌, 이듬해 공조판서, 1588년 지돈녕부사를 역임하였다. 공사를 분명히 하였고 청렴결백하여 주위의 친척들이 관직에 천거될 때마다 그 부당함을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