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내백(來伯). 안호일(安好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재(安載)이고, 아버지는 안세덕(安世德)이다. 어머니는 이방형(李芳馨)의 딸이다. 윤봉구(尹鳳九)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54년(영조 30)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769년 지평(持平)이 되었다. 1771년 정언(正言)이 되어, 당시 훈련대장 이장오(李長吾)가 군문(軍門)의 재화(財貨)를 사취하여 그 생활의 호사함이 법도를 어기고 방자하기 이를 데 없음을 지적하고 논죄할 것을 상소하였다. 또한 1774년 장령(掌令)이 되어 대신들의 타성을 논박하자, 영조가 이를 가상히 여겨 호피(虎皮)를 하사하고 격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