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덕취(德聚), 호는 상산(橡山). 안응회(安應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승(安陞)이고, 아버지는 진사 안수성(安壽成)이다. 어머니는 이기서(李簊叙)의 딸이다.
진사시에 합격한 뒤, 1738년(영조 14) 도사(都事)로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40년 지평(持平)이 되고 다음해에 정언(正言)이 되었다가, 1744년 장령(掌令)에 이어 필선(弼善)·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1746년 동지 겸 사은사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 무렵 사치가 극성하므로, 문단(紋緞)이라는 비단의 유입을 금지하도록 주장하여 왕의 금지령이 내리게 되었다.
그 뒤 수찬(修撰)·헌납(獻納)·승지를 거쳐 1754년에 대사간이 되었고, 1757년 고부사(告訃使)로 또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64년 대사간으로 빈객을 접대하는 데에 나아가지 않아 흥덕현감으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대사간·좌윤·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774년 등준시(登俊試)에 을과로 급제하여 공조판서에 오르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그뒤 벼슬이 판돈녕부사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