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집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헌납, 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덕취(德聚)
  • 상산(橡山)
인물/전통 인물
  • 본관순흥(順興,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수찬(修撰)|헌납(獻納)|승지|대사간
  • 출생 연도1703년(숙종 2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반윤홍 (조선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4월 15일
명현화상 중 안집 초상 미디어 정보

명현화상 중 안집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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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헌납, 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덕취(德聚), 호는 상산(橡山). 안응회(安應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승(安陞)이고, 아버지는 진사 안수성(安壽成)이다. 어머니는 이기서(李簊叙)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진사시에 합격한 뒤, 1738년(영조 14) 도사(都事)로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40년 지평(持平)이 되고 다음해에 정언(正言)이 되었다가, 1744년 장령(掌令)에 이어 필선(弼善) · 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1746년 동지 겸 사은사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 무렵 사치가 극성하므로, 문단(紋緞)이라는 비단의 유입을 금지하도록 주장하여 왕의 금지령이 내리게 되었다.

그 뒤 수찬(修撰) · 헌납(獻納) · 승지를 거쳐 1754년에 대사간이 되었고, 1757년 고부사(告訃使)로 또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64년 대사간으로 빈객을 접대하는 데에 나아가지 않아 흥덕현감으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대사간 · 좌윤 ·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774년 등준시(登俊試)에 을과로 급제하여 공조판서에 오르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그뒤 벼슬이 판돈녕부사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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