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안종언(安鐘彦). 황해도 신천 출생. 해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29년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해주지부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930년대 초기에 농민문학론을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 비평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농민문학문제에 대한 일고찰」(1931)·「농민문학문제 재론」(1931)·「농민문학의 규정문제」(1931) 등을 발표하여 백철(白鐵)과 농민문학 논쟁을 벌이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그는 처음에 빈농계급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적극적 주입을 주장하다가, 이에 대한 무리를 시인하고 카프 역시 일본의 나프처럼 농민문학연구회를 두고 점진적으로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30년 중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해체를 전후하여 「창작방법문제」(조선중앙일보, 1934.6.17.∼30.)·「창작방법문제의 토의에 기하야」(문학창조, 1934.6.)·「조선푸로문학의 현단계적 위기와 그 전망」(예술, 1935.4.) 등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창작방법문제 재검토를 위하여」(조선중앙일보, 1935.6.30.∼7.4.)·「최근창작평」(조선문단, 1935.7.)·「풍자문학론 비판」(조선중앙일보, 1935.8.7.∼10.)·「인간묘사론 시비에 관하야」(조선중앙일보, 1935.11.29.∼12.3.)·「쏘시아리스틱 리얼리즘 제창후의 조선문단의 추향」(조선일보, 1936.1.3.∼10.)·「창작방법론문제 논의의 발전과정과 그 전개」(조선일보, 1936.5.30.∼6.6.) 등을 발표하면서 유물 변증법적 창작 방법의 원칙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논의를 진척시켰다.
1930년대 후반에는 「문학에 있어서의 자유주의적 경향」(동아일보, 1937.10.27.∼30.)·「현대문학정신의 모색」(동아일보, 1937.11.11.∼14.)·「조선문학의 현대적 상모(相貌)」(동아일보, 1938.3.19.∼25.)·「지성의 자율성의 문제」(조선일보, 1938.7.10.∼16.)·「지성옹호(知性擁護)의 변(辯)」(비판, 1938.11.)·「문예비평의 논리와 형태」(조광, 1939.4.)·「문학에 있어서의 개성과 보편성」(조선일보, 1939.6.28.∼7.1.) 등을 발표하였다.
또한 「조선문학의 진로」(동아일보, 1939.11.30.∼12.8.)·「작가들의 반성재료」(조선일보, 1939.11.2.∼4.)·「문학의 진실성과 허구성의 논리」(인문평론, 1939.12.)·「문예비평의 전통과 전망」(동아일보, 1940.5.5.∼5.26.)·「문예비평의 현대적 윤리」(동아일보, 1940.5.29.∼6.2.)·「‘로만’논의의 제문제와 ‘고향’의 현대적 의의」(인문평론, 1940.11.) 등 비중 있는 평문을 발표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 친일문학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국민문학의 성격」(매일신보, 1942.7.21.∼24.)·「국민문학의 문제」(매일신보, 1943.8.24∼31) 등을 남겼다. 광복 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중앙상임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월북 후에는 『조선문학사』·『문학의 탐구』 등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