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의미로는 약재를 가루로 만들던 기구인 연석(碾石)·맷돌·절구·유발(乳鉢:약재를 넣고 찧기 위한 보시기처럼 생긴 그릇)·약연·분쇄기 등을 모두 포함시킬 수 있으나, 좁은 의미로는 배[舟]모양의 약연만을 가리킨다.
가운데 홈이 팬 배같이 생긴 그릇에 약재를 넣고, 축을 끼운 주판알 모양의 연알을 앞뒤로 굴려서 빻는다. 약연의 시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음식을 갈아먹던 맷돌류인 연석에서 찾을 수 있다.
기원전 수천 년경의 신석기시대에 만들어진 연석은, 불의 발견 다음으로 인류의 식생활 개선에 큰 혁신을 가져왔다. 음식의 맛을 부드럽고 맛있게 하였을 뿐 아니라 소화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때로는 이들 연석과 더불어 대추·마늘·도토리·아주까리·아위(阿魏:미나리과의 풀) 등의 약재로 쓰여지는 열매들도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있어, 약연이 이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점차 안정된 농경생활을 하면서 수백 년 동안 연석을 대물림으로 계속 사용하면, 마치 키나 삼태기 모양으로 닳게 되었고, 청동기·철기시대를 거치는 동안 홈이 더욱 깊게 패어 오늘날의 절구나 약연과 비슷한 형태로까지 발전되었을 것이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이미 어느 정도의 형태가 갖추어진 맷돌·유발·절구·약연이 사용된 듯하다.
약연의 명칭은 우리 나라에서는 한자로 ‘藥碾’과 ‘藥硏’을 병행하여 사용하지만, 중국에서는 모양이 배같이 생겼다 하여 약선(藥船)이라고 하며, 일본에서는 약연(藥硏)이라고 한다.
재료는 돌·나무·청동·놋쇠·청자·백자·오지·무쇠·유리 등 다양한 것을 사용하였는데, 약의 종류와 성분에 따라 달리하였으며, 은·옥·마노(瑪瑙) 같은 값진 재료가 이용되기도 하였다.
약연은 동양의학의 기본원리인 음양법칙에 부합되게 만들어졌다. 음양설에 의하면 태양·위[上]·남성 등은 양이며, 달·아래·대지·여성 등은 음에 속하는데, 음은 정(靜)하고 양은 동(動)하다 하였다.
우리 나라의 약연기를 살펴보면 약연의 받침이나 유발 및 맷돌의 밑짝은 여성의 생식기나 대지를 뜻하기도 하며, 연알 및 공이는 태양이나 남성의 성기를 본떴고 동적이어서 음양설에 부합된다.
음과 양의 이상적인 화합에서 바른[正]것이 생기며, 실제 기구의 요(凹)와 철(凸)이 잘 합치되어야 약이 잘 갈린다. 진자(振子)의 원리를 이용하여 약을 갈기 때문에 힘이 적게 든다. 자연법칙에 순응하는 것을 생활화하였던 우리 나라에서는, 약을 가는 기구의 모양도 그 원리에 입각하여 제작하였다.
또한, 우리 나라의 약연의 연알은 주판알과 모양이 거의 같으나,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그 두께가 얇고 끝이 날카로운 것이 많다. 그리고 약재를 빻은 다음 퍼내지 않고 그대로 쏟거나 다른 그릇에 담을 수 있도록 양쪽 끝부분 또는 옆에 홈이 팬 것도 있다.
약연의 외부에는 십장생·물고기·개구리·용 등의 그림을 조각하였거나 연년익수(延年益壽)·유능제강(柔能制剛)·수복강녕(壽福康寧)·수산복해(壽山福海) 같은 글자를 새겨넣기도 하고, 독극약이라는 표시를 하기도 하였다.
사용자의 신분이나 처지에 따라 조각수법은 물론 규모나 재료도 달라진다. 즉, 궁궐이나 큰 한약방, 가솔이 많은 반가(班家) 같은 데에서는 간혹 길이가 1m를 넘는 것을 사용하기도 하며, 조각도 매우 정교하다.